세상이 바뀌면서 음악도 변했다. 전축과 라디오로 들었던 조용필, 이미자, 나훈아의 시대에서 스마트폰과 유튜브로 즐기는 BTS, 뉴진스, 임영웅의 시대까지. 지금 80대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간은 곧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창밖을 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 기울이던 그때, 그리고 요즘은 손주의 휴대폰을 빌려 BTS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지금. 이 글은 80대 시청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음악의 흐름과 변화, 그 안에 담긴 추억과 감정을 담고 있다.
라디오: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었다
1950~60년대의 음악 감상은 대부분 라디오를 통해 이루어졌다. 전기가 귀한 시절, 라디오는 가족의 소통 창구이자 유일한 오락이었다. 이미자, 남진, 패티김, 나훈아, 조용필 같은 전설적인 가수들은 전파를 타고 전국 곳곳의 골목과 시골집 안방까지 찾아왔다. 라디오는 TV보다 상상이 풍부했다. 목소리만으로도 가수의 표정이 그려졌고, 음악만으로도 풍경이 그려졌다. ‘동백 아가씨’ 한 곡에 울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며 멀리 떠난 가족을 그리워했다. 그 시절의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축음기나 카세트테이프 없이도 사람들은 가사의 한 글자, 선율 한 줄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80대 어르신들에게 라디오는 음악을 넘어, 시절의 감성과 추억이 함께 담긴 기계였다.
BTS: 귀가 아닌 눈과 마음으로 즐기는 음악
2020년대를 사는 80대에게 BTS는 ‘알 듯 말 듯 하지만 분명 특별한 존재’다. 처음에는 손주의 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막을 보고 무대 영상을 보며 느낀 감정은 달랐다. 무대는 화려했고, 메시지는 진심이었다. BTS의 노래는 단지 젊은이들의 유행이 아니라, 그 시대가 품고 있는 불안, 희망, 위로를 담고 있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봄날’, ‘Yet to Come’ 같은 곡은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80대 어르신들은 처음엔 ‘요즘 노래는 시끄럽다’고 했지만, 반복해서 듣고 자막을 따라가며 감정을 이해했다. 특히 뮤직비디오 속 메시지와 무대 연출은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차원의 콘텐츠였다. 음악은 이제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과 감정으로 느끼는 예술이 되었다. 이들의 감상법도 변했다. 라디오에서 TV, 그리고 유튜브로 넘어오며 80대는 BTS를 통해 새 시대의 음악을 접하고 있다.
한국 음악의 변화: 세대는 달라도 감동은 같다
한국 음악의 변화는 단순한 장르의 전환이 아니다. 감성, 기술, 플랫폼이 전면적으로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창력 중심의 발라드나 트로트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퍼포먼스, 프로듀싱, 영상미까지 포함된 종합 예술이다. 과거엔 무명가수가 입소문을 통해 스타가 되었지만, 지금은 SNS 알고리즘을 통해 전 세계 팬을 만든다. 음악을 듣던 방식도 바뀌었다. LP → 카세트 → CD → MP3 → 스트리밍 → 유튜브. 80대 어르신에게는 낯선 변화지만, 자녀나 손주의 도움으로 이 흐름을 따라가며 다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아졌다. ‘트로트는 옛날 노래’라는 인식도 바뀌었다.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붐이 일었고, 임영웅, 영탁 같은 신세대 트로트 스타를 응원하는 ‘할미 팬덤’도 생겨났다. 음악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감동은 여전하다. 젊은 시절 눈물 흘렸던 조용필의 노래처럼, 지금은 손주의 휴대폰으로 BTS의 ‘봄날’을 들으며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세대는 다르지만, 음악이 주는 위로와 감동은 여전히 같다는 사실이, 음악이 지닌 진짜 힘이다.
라디오에서 BTS까지, 한국 음악은 시대와 함께 진화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오랫동안 목격해 온 세대가 바로 지금의 80대다. 익숙했던 감상 방식은 바뀌었고, 장르도 확 달라졌지만, 음악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뜨겁다. 젊은 시절의 감성을 안고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는 80대는, 변화의 수용자이자 또 하나의 청중이다.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어르신들의 방 안에선 옛 라디오의 잔잔한 선율과 함께 BTS의 ‘마이크 드롭’이 공존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 음악의 진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