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 땐, 집이 집 같지 않았단다.” 80대 어르신의 회상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붕은 비만 오면 물이 새고, 벽지는 매년 봄마다 새로 바르고,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밤마다 일어나 확인해야 했던 그 시절. 하지만 그런 불편 속에서도 함께 웃고, 울고, 끼니를 나누던 집은 그 자체로 가족의 중심이자 마을의 공동체였다.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와 스마트홈이 일상이고, 방마다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손가락 하나로 가전제품을 움직일 수 있다. 60년이란 시간 동안 집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이 글은 ‘달동네에서 아파트까지’,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집의 변화와 그 안에 담긴 추억과 감정,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집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달동네: 지붕은 낮고, 이웃은 가까웠다
19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까지,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등 도시 외곽 산등성이에는 '달동네'라 불리는 무허가 판잣집 밀집 지역이 있었다. 이름부터 시적인 이 ‘달동네’는 사실 달빛에만 의지해야 했던 척박한 삶의 상징이기도 했다. 판잣집은 버려진 나무판자와 골판지, 비닐을 엮어 만든 임시 주거였고, 여름이면 찜통, 겨울이면 냉동고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공동체가 있었다. 한 집에 반찬이 부족하면 옆집에서 나눠주었고, 연탄불이 꺼지면 아이를 보내 이웃집 불씨를 얻어왔다. 마당이 없었지만 골목은 놀이터였고, 상하수도는 없었지만 우물 앞에는 늘 대화가 있었다. “밤에 물소리가 들리면 옆집이 설거지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생활은 불편했지만 관계는 풍성했다. 지금처럼 철문은 없었지만, 마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집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연결이었다.
아파트: 꿈이 된 공간, 그리고 지금은 현실
1970년대 후반부터 정부 주도로 본격적인 아파트 공급이 시작되면서 ‘아파트’는 주거 공간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단열이 잘되고, 비가 새지 않으며, 보일러가 설치되어 따뜻했던 아파트는 판잣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에는 신도시 개발과 함께 수도권 외곽까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내 집 마련’이라는 단어가 곧 ‘아파트 분양’으로 대체되었다. 당시 30평대 아파트 한 채는 직장인의 10~15년 치 연봉이었고, 전세로 들어가기 위해 가족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하지만 이사 후 거실에 첫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처음으로 베란다에서 빨래를 말리던 날의 기쁨은 지금도 선명하다. “마당은 없지만, 창이 크고 햇살이 들었어요. 그걸로 충분했죠.” 아파트는 가족의 생활 패턴을 바꾸었고, ‘공간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자기 방에서 공부하고, 어머니는 주방을 중심으로 가족의 리듬을 조절했다. 하지만 동시에, 옆집과의 담장은 사라졌지만 이웃 간의 교류도 함께 사라져 갔다.
집의 역사: 내 인생의 장면이 머무는 공간
80대 어르신 한 분의 집 이력을 따라가 보면, 그것은 곧 한국 주거문화의 축소판이다. “시작은 흙집이었어. 물은 우물에서 길었고, 겨울엔 물이 얼었지. 장작으로 밥 지을 땐 연기도 연기지만, 불 붙이는 게 제일 큰일이었어.” 그러다 이사 간 연립주택은 철문이 있었고, 방이 둘이었다. “TV도 샀지. 흑백으로 월드컵도 봤어.” 이후 90년대엔 드디어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처음엔 무서웠는데, 익숙해지니 너무 편하더라고.” 이처럼 집은 단순히 구조물의 진화가 아니라, 삶의 레벨이 올라가는 체감의 공간이었다. 집이 바뀔 때마다 가족의 삶도 바뀌었고, 가구의 배치, 가족 간의 대화, 식사 방식까지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방 하나에 가족이 모여 자던 문화에서, 각자 방을 가지면서 ‘개인의 시간’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집의 변화는 곧 삶의 구조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달동네와 아파트 그 사이: 잃은 것과 얻은 것
도시화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판자촌을 떠나 아파트로 들어가면서, 그 공간에는 낭만과 함께 많은 것이 사라졌다. 낡은 기와집, 삐걱이는 마루, 대문 앞 고무신 두 짝, 겨울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여름 저녁 모깃불 피우던 마당… 이 모든 것이 ‘불편함’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졌다. 대신 깔끔한 인테리어, 층간소음 방지 매트, 고급 조명과 시스템 창호가 들어섰다. 삶은 편리해졌지만, 정서는 낯설어졌다. “지금은 비 오면 물 새진 않지만, 대신 사람 목소리는 안 들려.”라고 말하는 어르신의 말속에는, 단지 공간의 아쉬움이 아닌 정서적 고립감이 담겨 있다. 집이 커질수록, 외로움도 커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문장이다. 반면 얻은 것도 많다. 보온, 위생, 안전, 정보 접근성, 프라이버시. 그러나 그 사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집이란 무엇인가: 벽과 지붕 너머의 이야기
오늘날의 집은 기능적으로는 완벽에 가깝다. 자동문, 스마트도어록, AI 스피커, 원격 난방 제어까지. 하지만 그 속에서 ‘집 같은 느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왜일까? 집이란 단지 비바람을 막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김치 냄새가 베인 벽지, 자식 키우느라 지워진 벽의 연필 자국, 같이 웃고 싸웠던 식탁, 오래 앉았던 소파. 이 모든 것이 집을 ‘집’으로 만든다.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집은 비록 낡고 불편했지만,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반면 요즘은 멋진 인테리어 속에서도 ‘살아 있는 흔적’이 점점 줄고 있다. 삶이 집을 만들지만, 집도 삶을 바꾼다.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남길지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 있다.
달동네에서 아파트까지, 그 변화는 단순한 주거 구조의 발전이 아니라, 한 세대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변화였다. 판잣집 지붕 아래의 웃음, 연립주택 마루에서의 첫 TV, 아파트 베란다에서의 첫 화분… 집은 시간의 창고이며, 기억의 도서관이다. 우리는 더 편리한 집을 얻었지만, 가끔은 돌아봐야 한다. 집 안에 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지금 사는 이 공간이 과연 ‘살아 있는 집’인지. 그리고 미래의 아이들이 ‘그 시절엔 이랬단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한 공간을 남길 수 있을지를 말이다.